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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야촌
작성일 2009-03-13 조회수 4957
제목
한우의 역사
현대 서유럽의 농부에게 소는 우유, 버터, 크림, 치즈, 고기를 제공해주는 동물이다.
세계의 나머지 많은 농민에게도 소는 오늘날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마차를 끄는 동물로서 그의 생애에 있어서 첫째 기능은 짐마차 혹은 쟁기를 끄는 데 있다.
소는 또한 우유를 얼마 제공하지 않지만 너무 늙어서 일을 못하거나 번식을 할 수 없을 때는 죽어서 고기를 제공한다.
소의 몸뚱이에서 이용되지 않는 부위가 없을 정도로 고기와 뼈심은 식용에, 뿔, 뼈, 가죽은 공예품, 무기, 의복으로, 기름은 양초로 발굽은 젤라틴과 풀로 이용되는 반면에 살아있는 소로부터 나오는 비료는 농사 순환의 긴요한 부분을 이루고 어떤 나라에서는 그것이 연료로 쓰일 뿐 아니라 건축재료로도 쓰인다.
사육 소만큼 다방면의 자원을 공급하는 동물은 별로 없으며, 더욱이 황소와 암소는 수천 년 동안 인류 사회의 상징적 동물이 되어 왔다.
기원전 4000년경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문명에서 최초로 우유를 공급하는 동물로서 소를 이용하였다는 확고한 증거가 나타난다.
아마도 낙농은 이들 지역으로부터 퍼졌겠지만 북유럽에서도 일찍이 낙농이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중앙 아프리카와 동부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는 우유를 먹지 않는 전통이 있으며 또 이들 지역의 많은 성인은 생리학적으로 신선한 우유의 주성분인 젖당을 흡수할 수 없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문제에 대한 최근의 보고에서 시문스(Simoons, 1979)는 우유와 유제품을 소화하는 성인의 능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발전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경제는 목축업에 근거하지만 계속해서 영양 스트레스를 받는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만약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상대적 이익은 클 것이다.
시문스는 여러 나라에서 현재 성인의 젖당 소화불능을 조사함으로써 이 능력의 장점을 평가하려고 시도하였다. 전통적으로 북유럽에서는 낙농이 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으며, 이들 나라에서는 젖당 소화불능 성인의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비율은 남유럽으로 갈수록 현저하게 높아지며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에서 특히 높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로마시대의 농업에 관한 저술가인 콜루멜라와 바로가 소에 대해 기술할 때 마차를 끌거나 제물로 쓰이는 외에 다른 용도는 거의 없다고 한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로마인들은 우유를 마시지 않았으며 이것이 오늘날 그들 후손의 생리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남동 아시아의 사육 소와 달리, 모든 사육 소는 절멸한 야생 혹은 들소인 Bos primigenius 라는 단일 야생종에서 유래하였다. 이 들소는 어디나 존재했으며 홍적세후기와 전신세 초기에 매우 번성하였으며, 북미를 제외한 북반구의 대부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종은 인간의 사냥으로 그 수가 감소되었으며 영국에서는 청동기 전에 절멸하였거나 적어도 매우 드물게 되었다. 중부 유럽에서는 맹렬한 사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살아 남아 있었으나 결국 17세기 초에 전멸되고 말았다.

마지막 개체는 1627년에 폴란드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들소는 나뭇잎과 풀을 뜯어 먹는 반추동물로 숲 속에서 살았지만 엉성한 덤불에서도 번성하였다. 이 들소는 아마도 북위 60°위나 인도를 제외한 남위 30°아래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도에는 독특한 모양의 야생황소인 Bos Primigenius namadicus가 살고 있었다는 것이 홍적세의 화석 기록에 나와 있다. 이 종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퍼져간 인도의 등에 혹이 있는 제부(Zebu)라는 소의 조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도의 들소는 Bos primigenius라고 하는데, 이 종처럼 널리 퍼져있는 종은 지리적 품종이 매우 많았고, 분종(cline)끼리 서로 혼합되었을 것이지만 단편적인 유골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지역의 구석기시대 바위에 그려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털색깔에 지리적 변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프랑스의 도르도뉴(Dordogne)에 있는 라스코(Lascaux)에서 나오는 것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들로부터 제우너(Zeuner, 1953)는 북부 유럽과 중부 유럽 품종의 모양과 구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추론을 내렸다.
<수컷은 어깨의 높이가 1.5-2.0m 이고 매우 건강한 목을 가지고 있었다. 수소는 대개 검고 나이가 먹을수록 더 진하고 검게 되었다. 앞머리에 있는 코와 털은 희었으며 보통 뒤로 달리는 흰줄이 있었다. 때로는 가벼운 반점이 안장에 있었다. 암소는 송아지처럼 색깔이 다소 붉다. 북쪽 품종은 아마도 남쪽 품종보다 크기와 몸무게에 비해 좀더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색깔이 상당히 바랜 상태였다.>
금세기 초 유능한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사육하는 소의 기원을 추론할 때 실수한 문제 중 하나는, 들소에게는 매우 현저한 성적 이형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수소와 암소의 유골을 다른 두종에서 온 것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이다. 수소는 암소보다 길고 모양이 다른 뿔을 가지고 있었으며, 크기가 훨씬 더 컸다. 인도 들소가 사육 소의 단일 조상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소로 분류되고 있는 소과(Boridae)의 여러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소과 소속에 속하며 이 속 안의 여러 다른 종 역시 사육되어 왔다. 그들 중 일부는 서구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부아시아에서는 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는 편의상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사육 소와 야생 소를 라틴어 이명법으로 부르기로 한다. 소과의 몇몇 종의 유전적 상태에 관하여 분류학자 사이에 반론이 있는데, 그것은 종 사이뿐 아니라 몇몇 속 사이에서도 교배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통적인 학명을 인정하는 것이 좀더 명확할 것이다
 
유럽의 소
Bos primigenius. 들소 혹은 사라진 거대한 수소. Bos tarurus의 야생조상. Bos longifrons. 구체적으로 인정된 종은 아니다. 유럽의 고고학적 발굴 장소에서 나온 작은 뿔을 가진 소의 유골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 유골들은 본래는 사육 소의 조상이라고 짐작되고 다른 야생 종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어졌다. 이 가설은 인도 들소가 너무 크고 흉폭한 동물이었으며 한 때 인간의 지배 아래 굴복하였을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인도 들소의 유골이 신석기시대보다 좀더 앞선 퇴적층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사육동물을 대표한다고 확실하게 가정할 수 있다.


아시아의 소

Bos primegenius namadicus. 들소의 철저한 인도종, 때로는 다른 종으로 취급된다. 아마도 인도의 등에 혹이 난 소 혹은 제부 소(os indicus)의 조상일 것이다. 인도 대륙에서 몇 개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Bos indicus. 인도소, 사육하는 등에 혹이 있는 소로 제부 소와 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Bos gaurus. 야생 가우르 소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숲에서 발견된다. 때로는 아속인 Bibos로 분류된다. 아마도 미탄 소(Bos frontalis)의 조상일 것이다. Bos frontalis. 사육하는 미탄 소 혹은 가얄 소, 때로는 아속 Bibos로 분류된다. 아삼, 미얀마의 북서부, 네팔에서 발견된다. Bos javanicus(Bos banteng과 동의어). 발리 소, 때로는 아속 Bibos로 분류된다. 야생 반텡 소는 이제는 매우 드물며, 자바에서 몇 개의 고립된 집단으로 제한되어 있다. 예전에는 보르네오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미얀마에서 발견되었다. 사육하는 반텡 소는 발리 소로 알려져 있는데, 발리, 티모르, 셀레베스, 자바, 보르네오에서 발견된다. Bos sauveli. 때로는 아속 Bibos로 분류된다. 쿠프레이(kouprey) 소는 캄보디아 숲속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야생 소로 살고 있다. 이제는 절멸의 위기에 있는 종이다. Bos mutus. 야생 야크로 이제는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어서 매우 드물다. 티벳, 네팔, 히말라야에서 발견된다. 때로는 아속 Poephagus로 분류된다. 사육하는 야크인 Bos grunniens의 조상이다. Bos grunniens. 사육하는 야크로, 같은 산악 지대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야생 종으로 예전에는 여기 저기로 떠돌아 다녔다.


물 소

Bubalus arnee. 야생 인도 물소는 오늘날 희귀한 동물로 네팔과 동남아시아에서만 발견된다. 전에는 서아시아에까지 널리 분포하였다. 사육 물소(Bublus bubalis)의 조상이다. Bubalus bubalis.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사육하는 소로 가장 흔한 종이다. Anoa 종. 물소에는 왜소한 세 가지 종이 있는데 그들은 때로는 Bubalus의 아속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희소한 야생동물로 셀레베스와 필리핀의 민도로 섬에서 발견된다. Syncerus caffer. 야생 아프리카 물소로 결코 사육된 적이 없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와 삼림 지역에서 발견된다.


들 소

Bison bona년. 유럽의 야생 들소 혹은 위센트(wisent)는 현재 폴란드와 구소련의 몇몇 숲 속에 국한되어 있다. 이 들소는 낡은 문헌에서 한때 혹은 로 불렀으며 유럽에서 야생 소에 관한 옛날의 설명을 읽을 때에는 Bison bonasus 혹은 Bos primigenius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들소는 미국의 들소와 자유로이 교배되며 그래서 생식 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종을 동일한 종으로 다루어 둘 다 Bison bosin으로 이름지었다.
Bison bison. 미국의 들소를 가끔 미국에서는 물소(buffalo)로 부른다. 전에는 전 대륙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보호구역에만 살아남아 있다. 유럽의 들소와 미국의 들소는 한번도 사육된 적이 없다. 야생소를 사냥하다가 어떻게, 왜 길들이기 시작하였는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어깨의 높이가 1.5m나 되는 큰 소를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며 스스로 인간의 주거지 근처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한 가두기도수비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간이 가축화 초기에 잡은 소를 무엇으로 이용할 수 있었는지를 추측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길들인 들소 암컷이 젖을 먹도록 허용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량되지 않은 원시 암소의 젖을 짤 수 있기까지에는 상당한 노력과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행해진 방법은 같은 방법에 대한 역사적 증거와 함께 아모로소(Amoroso)와 제웰(Jewell, 1963)이 발표했다.
암소는 편히 쉬게 하였으며 젖을 자는 사람과 매우 친밀하였으며 송아지는 그대로 있거나 암소가 송아지라고 생각할 만한 것을 대신 놓아두어야 했으며 때때로 젖을 내는 반사작용이 일어나기 전에 분비를 허용하도록 분만할 장소로 가서 자극을 줄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소를 굴복시키는 일은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는 동물을 인간의 주가지 근처에 머물도록 장려함으로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동물이 접근할 수 있는 일정한 장소에 소금과 물을 계속 공급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다. 시문스(Simoons, 1968)는 어떻게 아삼 고원의 미탄 소가 필요한 소금을 이용하기 위해 숲에서 나와 마을 근처에 머물도록 설득할 수 있었는가를 기술하였다. 이 야외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는 동물에게 손으로 소금을 먹여주기 위해서는 접근할 수 있으며 툭 칠 수도 있다. 이러한 소들은 젖을 내지도 않으며 잡아 먹히지도 않고 단지 제물과 물물교환의 목적으로만 길렀을 것이며 아마도 처음에 들소는 이러한 목적으로 길들여진 것 같다.
의심할 여지없이 선사시대의 많은 사회는 소를 숭상하였는데 예를 들면 Catal Huyuk에서 인간의 소상(小像)과 풍요의 상징과 관련하여 뿔의 모양을 예식에서 다루었다는 증거가 있다. VI지층(기원전 약 5950년)에서 나온 한 사당에는 점토로 만든 Bos primigenius의 뿔이 장식되어 있는 긴 의자가 있다. 인간의 주거지 근처에 머물게 된 소 무리는 여러모로 주위 환경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첫째로 나뭇잎과 풀을 뜯어 먹는 동물이므로 나무의 얕은 가지와 둥지를 파괴하고 덤불들을 짓밟았을 것이며, 연못이나 개울 같은 수원을 더럽혔을 것이다. 토지를 짓밟는 것은 주민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었는데 경관을 넓혀주고 사람에 의한 개간이 확대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로 심어놓은 어떤 작물이건 망쳐 버렸을 것이다. 다만 안전하게 울타리로 보호한 것만은 사람들에 의하여 수확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셋째로 소나 송아지의 존재는 커다란 살쾡이, 늑대, 곰 같은 포식동물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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